해외파견 北여성 ‘현대판 노예’…하루생활비 1달러, 2~3중 감시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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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형사재판소(ICC)에 북한 김정은을 회부하기 위해 탈북자들이 과거 북한에서의 인권 침해 가해 사실을 증언했다.

NK지식인연대가 1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ICC 제소, 북한인권 가해사실 증언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조직된 ‘비사회주의검열상무(비사회주의그루빠)’ 조직원으로 활동했던 김모(63)씨는 “당시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의 소식과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일탈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고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속했던 비사회주의그루빠는 1983년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 당과 군, 보위, 안전 기관들에서 선출된 충성분자들로 조직됐다. 검열과정의 모든 상황과 처벌 결과를 보고하고 재가를 받아 활동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비사회주의그루빠에서 열차안전원으로 불리며 주로 열차 안에서 업무를 수행한 김씨는 “과거 벌목공에 대한 감시를 맡았을 때 러시아 현지에서 노동자들을 호송해 왔다”며 “이 과정에서 벌목공들의 두 손에는 족쇄를 채웠고, 한쪽 다리에는 깁스를 해 움직임이 원만하지 못했음에도 여러명의 감시자들이 붙었다”고 전했다.

그는 열차안전원의 경우 승무 당시 예비 탄까지 포함해 총 14발의 탄알을 지급받게 된다며 “실제로 총을 쏘는 경우는 김일성과 김정일에에 하사할 선물을 실은 열차, 군수물자를 실은 열차에 대한 사고가 있을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열차 안전원은 행동이 이상하거나 표적이 되는 자를 발견하면 공포탄을 쏘고 실탄을 쏘게 돼 있지만, 공포탄을 쏘면 대부분 도망을 포기하고 잡히게 되면 반 주검이 되도록 맞는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1983년 함흥에 있던 4교화소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당시 “수감자는 6000명 정도였으나 이동수단이 부족해 2000명은 출소키시고 4000명만 함북 어랑군으로 실어 날랐다”며 “4교화소 죄수들을 보니 영양실조 등으로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어 “열차 이동 중에도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아 10명을 야산에 묻고 다시 열차를시킨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 1987년 김일성 생일을 맞아각지에서 보낸 선물이 평양으로 올라가는 와중에 산삼 415뿌리가 도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전국에 비상령이 내려 철도보안부는 며칠 밤을 새우며 범인을 색출하려 했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하고 그 부모를 대신 총살했다”고 회상했다.

함흥공산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비사회주의그루빠 멤버로 활동한 김모(56)씨는 “비사회주의그루빠 함경남도 검열조직의 멤버로서 활동하던 시기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와 접근하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 비인간적 행위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를 무참히 침해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2000년 함흥시 동흥산 구역 개인 주택 불신검문 과정에서 중학생 3명이 남한 영화 모래시계를 몰래 시청하는 장면을 적발했다며 “녹화테이프는 아버지가 도당 위원회 선전비서의 아들이 가지고 온 것이라 아버지인 선전비서를 취조했는데, 취조하는 과정에서 선전비서는 열 손가락이 다 부러졌고 각목으로 맞는 등 매일같이 고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2002년 7월 비사회주의그루빠에 관여한 동안 500여건의 사건을 처리했다”며 “이 과정에서 손가락 꺾기, 무릎 각목으로 때리기, 손톱 뽑기, 전등 앞에서 잠재우지 않기, 굶기기 등 온갖 비인간적인 고문을 자행해 결국 조사자들이 바라는대로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암행어사’로 불리던 국방위원회 109검열 상무 조직으로 일하며 이른바 ‘사회정화 작업’에 참여했던 장모(49)씨는 “4인으로 구성된 기술 팀에서 6개월 동안 저장매체를 살려 외부정보 시청 기록을 보고한 건수만 수천건을 넘는다”며 “기술팀의 충성스럽고 집요한 분석결과에 따라 극형에 처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된 주민도 상당수”라고 증언했다.

또 다른 탈북민 김모(59)씨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여성근로자들에 대해 고백했다. 그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여성 근로자들은 현대판 노예”라며 “1998년부터 북한은 체코와의 합작 사업이라는 명목하에 여성들을 해외로 보내 외화를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체코에 나간 여성 노동자들에게 숙소 밖으로의 자유 외출을 절대 허용되지 않았고, 단지 1주일에 한번씩 부식물 구입을 위한 외출만이 허용됐다”며 “외국인과의 1대 1접촉도 불가하고 옷차림 등 외모관리에서도 ‘사회주의 검박함’을 벗어난 자유는 전혀 없다”고 전했다.

그는 해외 파견 여성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에 대해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만을 주고 나머지는 당국이 챙긴다”며 “숙비와 식비 등을 빼고 모두 당국에 상납하면 이들은 하루 1달러 정도로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가격이 저렴한 안남미나 마카로니를 구매해 물을 부어 오랜 시간 끓여 조금씩 아껴 먹었다며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영양실조와 체중 미달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해외 파견 여성 노동자들은 2중, 3중 감시 속에서 짐승과 같은 존재로 취급당했다”며 “지금도 해외 노동자들은 피와 땀으로 벌어 들인 외화를 모두 김정은 독재나 자신을 위한 호화스러운 생활과 세계인류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NK지식인연대 측은 “ICC가 북한인권탄압의 주범인 김정은을 처벌하기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며 “특히 북한주민들의 인권 피해자 조사 기록과 함께 가해자 진술과 증언도 더 많이 고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대 측은 북한인권 가해사실이 증언된 자료를 ICC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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